1999년이었다. 야학활동을 처음 시작한 날이
대학시절 '야학'동아리가 눈에 들어왔고 '야학'에 대한 이끌림으로 시작한 해가 바로 1999년이었다.
1999년 대학 1학년때 부터 야학에 빠졌고 그 누구보다 동아리 활동과 야학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해왔다.

그리고 2001년 2월. 군대를 가느라 야학 수업을 중단했다. 2001년 1월까지도 수업을 하고서 2월에 군대를 가느라 어쩔 수 없이 수업을 중단해야 했다. 군제대 한 것이 2003년 4월, 군제대 후 당분간 부산집에 있어야 했는데 그 때도 지역에서 '야학'을 찾았다. 이때도 백수(?)생활 하면서 정말 열심히 야학 활동을 했다.
이듬해인 2004년, 복학을 위해 서울로 가면서 부산에서 하던 수업은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다행히도 나와 수업을 하던 학생분들이 대부분 졸업을 했는데 그 때 정말 눈물이 났던 기억이다. 2004년 복학을 하고나서는 동아리의 야학활동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다른 곳을 찾았다. 그곳에서 2004년부터 2006년 2월 제주로 오기전까지 계속해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2006년 나는 제주로 취업을 했고 신입사원 교육기간이 끝난 2006년 10월부터 야학을 다시 시작했다. 이곳에서의 야학활동 기간만 해도 3년 반이 지난 듯 하다.

지난 활동을 돌아보면, 대략 10년간의 활동이었고 마지막(?)수업을 하러 간다는 것이 좀 미안하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수업을 가기전 4명의 학생들이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공부하길 바라며 4권의 노트를 샀다. 그리고 나에 이어 4월 검시가 끝나고 난 후부터 수업을 하기로 한 회사동료분과 함께 갔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내가 제주에서 야학을 시작하던 초창기부터 수업을 하고 지난 8월에 합격한 학생을 만났는데 학생분이 먼저 알고 있었다. 오늘 내 수업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를 떠나게 되어 당분간 수업을 못한다는 사실에 서로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나와 거의 만 3년동안 수업을 하고서 작년 8월 시험에 합격한 학생분. 3년 반 동안 고등반 졸업자는 내 클래스에서는 단 2명을 배출했고 그 중 한분이니 무척이나 애정이 가는 학생분이다.

이 학생분은 이제 대학을 준비하기 위해 영어 수업만 참가를 하고 있는데, 열심히 하여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며, 마지막 수업이면 무언가 특별할 것 같았는데 별로 그렇진 않았다. 스스로도 별 실감이 나지 않았던 듯.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수업일 것 같았다. 어쩌면 그래서 최근엔 좀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마음같아서는 지금 수업하는 4명의 학생들 모두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모습을 보고 활동을 마치면 좋을 것 같은데..언제 서울로 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4월 검시가 끝나고 8월 검시까지 수업을 하다가 검시를 앞두고 교사가 바뀌는 것은 좋을 것 같지 않아 4월 검시까지를 마지막 수업으로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다행히 4월 검시 이후 나보다 더 수업을 잘해주실 회사 동료분께서 맡아주시기에 마음이 한결 편하다.

수업을 마칠 시간이 되었을때, 검시를 앞두고 진도를 다 못한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마지막 수업이라는 것이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초창기보다 좀 열정이 빠진 내 모습에 스스로 부끄럽기도 하고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 나의 마지막 야학 수업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오늘 수업에 나오지 않은 한 학생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오늘 몸이 안좋았고 또 앞으로 야학에 나오기 힘들다고 한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야간에도 일을 해야 할 것 같다는데 이 친구의 사정을 대충알고 있기에 이번 4월 검시에 이 친구가 꼭 합격하기를.. 하고 빌었다.

10년 넘게 지속한 야학활동의 마지막 수업. 그러나 난 마지막이라고 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사정이 있어 당분간 중단하지만, 나중에 다시 여건이 될 때 다시 더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고 싶다. 적어도 이 땅에 공부를 할 기회를 놓쳐 한이 되는 그러한 사회는 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한 고등반 4명의 학생분들, 4월 11일 검정고시에서 좋은 결과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Posted by 기동청년
,


1999년부터 야학교사로 활동을 했으니, 올해로 야학경력이 횟수로 11년째이다. 이 기간동안 야학교사를 하면서 다양한 과목들을 수업했으나, 가장 많이 수업을 한 과목은 바로 수학이다. 그리고 현재도 고등부 수학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난 야학에서 수학을 가르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 이유는 내가 수학을 잘해서도 아니고 특별히 잘 가르쳐서도 아니다. 다만, 수학이라는 학문이 가장 평등하고 차별 없는 학문이라 생각하여, 나는 수학 수업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수학수업을 하면서 내가 고등부 수학을 맡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고등부 수학 어렵지 않냐면서 놀라곤 한다. 하지만, 검정고시 기출문제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등수학에 비하면 어렵지 않다. 그리고 학생들은 기초가 부족하기 때문에 +, - 등의 기본 개념에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내가 수학 수업을 할 때 가장 먼서 수업하는 것은 바로 '=' 인데 그 이유는 수학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예라고 생각해서이다.

사실 기초가 부족하다보니 학생들은 x+2=3을 계산할 때 +2가 넘어가면서 부호가 바뀐다고 설명한다면, 굉장히 어렵게 느낀다. 그래서 나는 설명할 때 '=' 는 영어로 'equal' 이고 수학은 가장 평등하다고 먼저 설명을 한다.
'=' 를 기준으로 좌우는 항상 평등하다 그래서 같은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왼쪽에 있는 '꼴보기 싫은'(수업할 때는 관심 유도를 위해 이러한 단어를 쓴다 ^^) +2를 없애주기 위해 -2를 붙였는데, 수학은 '=' 를 기준으로 항상 평등하기 때문에 오른쪽에도 똑같이 -2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마치면서,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수학에 자신감을 주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이 있다. 세상은 불공평 할 지라도 수학은 항상 평등하다 그러니 어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지난번 수업에서 하고 떡볶이를 먹으러 간적이 있는데, 분식점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비장애인의 경우에 3분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곳곳에 보도블록이 튀어나와 휠체어를 탔을 경우에는 위험한 것이다. 또한 분식점에 도착했을 때 계단을 오를 수 없어 도로쪽에 테이블을 두고 우리는 떡볶이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수학이라는 학문이 평등한 것처럼, 세상도 정말 평등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성과 여성,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등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함께 평화롭게 지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오늘도 난 생각해 본다.

Posted by 기동청년
,
2008/08/05 21:01

2008년 하반기 검정고시가 8월 1일 금요일에 있었습니다.
지금 학생들과 시험을 치른 것은 4번째 입니다.
4번의 시험을 보는 동안 대졸입학자격 을 취득한 학생도 한 명 있으나
그 한명 이외에는 아직 대졸 자격을 취득한 학생이 한 명도 없습니다.

8월 1일 금요일.. 2008년도 마지막 검정고시 시험일.
어떤 분은 검정고시를 왜 평일에 보냐고 문의하시는 분도 있겠죠?

사실 이번에 시험을 본 학생중 한명도 회사에 월차를 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시험에 응시하지 않는 다는 것을 겨우 겨우 설득해서 시험을 치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잠시 설명을 하면, 현재 검정고시는 1년에 2회 시험을 치릅니다.
4월과 8월에 시험이 있죠....

4월엔 공휴일에 시험을 보지만, 8월엔 평일에 봅니다.
일요일에 시험을 보면 종교활동이 위축된다는 지적(?)이 어느 단체 등에 의해 있었고 그것이 어느정도 반영되었기 때문이죠 ㅡ.ㅡ;

뭐 여기서 더 자세히는 이야기 하지 않겠으나 검정고시 그 취지를 생각한다면, 저것이 맞는지 정말 ;;

여하튼 8월 1일 검정고시 시험일에 전 학생들을 응원하러 못갔습니다.
이전 3번은 모두 참석하였으나, 부득이참석을 못했네요.

평일이라 시험장에 가는 것은 원래 힘들어 시험 후 회식이라도 가려 했는데... 출장이 잡혀서 가지 못했었죠...
학생들에겐 많이 미안했습니다 ;

바쁜 일정을 마치고 기차를 탔는데. 학생 한 분이 문자가 오더군요.
"선생님 왜 오늘 안왔어요 오늘 선생님 얼굴 보고 싶었는데..."

"아 저 오늘 출장이었어요. 미안해요. 시험을 잘 봤어요?"

"아 그랬구나, 선생님 힘내세요. 시험은 너무 어려웠어요 ㅜ.ㅜ"

이렇게 문자를 몇 번 주고 받은 후 학생들에게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야학교사 활동이 8년 정도 되었는데..  최근 좀 나태해진 것 같거든요.

여기 공간만 보아도 매 번 수업 후 쓰던 개인적인 수업일지도 안쓴지 오래되었습니다. 제가 요즘 너무 나태해진 탓이죠...
스스로 수업을 하며 발전한다고 말했던 적도 있는데.. 더위를 먹어서인지(핑계) 많이 나태해 졌네요.

검정고시가 끝나서 야학도 2주간 방학을 가지는데 방학 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우선은 열심히 시험 본 학생들 격려부터 해야겠죠?

학생들이 먹고싶었던 삼겹살 먹으며 힘을 내 보렵니다.

저도 힘내야겠죠 ^^;
Posted by 기동청년
,
2008/06/12 15:09

오랜만에 야학 일지를 쓴다.
요즈음 여러모로 바쁘다 보니 ㅡ.ㅡ;

최근들어 함께 수업하는 학생들의 연령대가 많이 낮아졌다.
쉼터에서 지내는 친구 2명이 20세, 18세로 연령대를 확 낮추고 있으며, 센터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하는 20세 친구도 수업을 받는다. 그리고 꾸준히 수업을 받는 40대 여성분까지 해도 3명의 젊은 친구들 덕분에(?) 평균 연령이 대폭 낮아진 것이다.

이래 저래 검정고시 기출문제를 가지고 수업하다가 우연히 20세 친구가 아르바이트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PC방에서 새벽부터 일을 한다고 한다. 새벽 6시 부터 하루 6시간 정도 일은 하는데 시급은 3000원....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2008년 현재 3770원이다.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수업시간에 그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된다고 이야기는 해 주지만, 아주 적극적으로 싸워야 한다거나 내가 함께 하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그 친구 이야기가 그래도 본인은 나은 편이란다. 친구중 어떤 친구는시급 2500원을 받으며 일하는 친구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나는 대학때 '아르바이트 권리찾기'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나에게 상담을 받은 친구들을 노무사와 연결시켜 주거나 학교 앞 해당 가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거나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즈음 직장인이라는 핑계, 그리고 개인적인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러한 아주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 함께 못하고 있다. 정말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에게 수업을 받는 그 학생에게 마치면서 PC방 주인아저씨께 최저임금이 얼마임을 이야기 하고 정당하게 요구를 하라는 말, 그리고 해결이 되지 않으면 노동부에 진정하라는 말과 노동부 진정할때는 내가 도와주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 친구가 그런 행동을 할 지는 의문이다. 내 생각에는 하지 못할 것 같다.
현재 쉼터에서 지내는 형편으로 지내는 사정또한 여의치 않기 때문이리라...

여러가지 고민과 부끄러움이 교차하는 날이다.

Posted by 기동청년
,
2008/05/15 23:45

오늘은 '스승의 날' 이었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촌지 등의 논란으로 '스승의 날'에 수업을 안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은데 올해는 어버이 날 등에 단기방학을 한 학교들이 많아 수업을 하는 곳이 많은 듯 하더군요.

저는 정식 교사는 아니지만, 스승의 날 인 오늘 뜻깊게 보냈습니다.
매주 월요일 회사일을 마치고 참여하는 야학에서 '스승의 날' 행사를 준비했기 때문이죠.
사실 99년도 부터 야학활동을 하면서 '스승의 날'이라고 기념에 참여 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작년에도 지금 활동하는 야학에서 행사가 있었기는 했지만, 스승의 날 당일 당직 근무라 참여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회사일을 마치고 야학으로 가니 왼쪽편엔 휠체어 등에 학생분들이 앉아 계셨고 오른쪽엔 각 과목별 야학 교사분들이 자리했습니다.
학생대표가 사회를 보며 야학교사분들께 감사를 드리는 시간, 그리고 교사 대표가 답사를 하는 시간 등. 야학의 '스승의 날' 행사였지만 기존 학교들의 '스승의 날'행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형식적인 차이가 있다면, 정규학교가 아니라는 점 뿐이었죠.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행사 내용이 아니라 학생 한 분 한 분의 눈동자와 교사 한 분 한 분의 가슴에 있지 않았나 합니다.
어찌보면 '야학'이라는 공간에서 굳이 기존 학교의 형식을 다 따라할 필요가 있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활동하는 야학의 학생분들은 대부분이 성인 장애인입니다. 과거 학창시절을 보냈어야할 시기에 교육여건이 좋지 않아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학교를 다녔던 것을 보았다면 그 상실감은 정말 컸겠지요. 그러한 학생분들이 지금 야학에서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만학도지만, 그리고 함께 수업받는 학생들의 나이도 다 다르고 야학에서 수업을 하는 교사들은 아들.딸 정도 되지만 이렇게 야학에서 수업받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요.

오늘 야학에서 '스승의 날'행사를 하면서 눈물이 글썽 글썽한 학생분을 보았습니다.
따로 묻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게 해준 야학에 대한 감사함. 야학 교사분들에 대한 감사 등 등이 가까이에서 느껴졌습니다.

학생분들이 카네이션을 달아주는데 저는 생전 처음 제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았습니다. 그 도 그럴것이 이제 나이 20대 후반에 어떻게 카네이션을 제 가슴에 달 기회가 있었겠습니까?
오늘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행사때도 하나 새로운 장면이 있었습니다.
보통 카네이션은 학생들이 다가와서 교사들께 달아주겠지만, 오늘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이유는 학생분들이 보통 장애가 있으시기에 야학교사분들이 학생들에게 다가 간 것이지요.

이것이 제가 지금 야학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상-하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학생에게 다가갈 수 있고 학생과 교사가 서로 교감하는...

'스승의 날'인 오늘 저는 야학교사라서 정말 행복합니다.
Posted by 기동청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