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야학을 하는 이유는...
뭐 가장 단순하게 말한다면 '좋아하니깐'
대학에 입학하여 가입한 유일한 동아리가 '야학'동아리였고
군 제대후에도 찾았던 것이 '야학'이었고
지금 직장을 다니면서 하는 것도 '야학'이다.
생각해보면... 가장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어느 어머님이나 비슷하겠지만...
어머님이 학교에 다녔어야 할 시기에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았다.
아직도 '남성'보다 '여성'이 사회생활하는데 여러가지 제약 혹은 차별이 있음을 생각하면
과거 어느정도나 심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과거 '여성'은 시집이나 잘 가서 살림이나 하면 되지 무슨 놈의 공부냐 는 말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기에 그 시대의 어머님들은(여기선 일단 내 감정상 어머님이라고 호칭하고 싶다. 물론 그렇지 않을수 있으나... 난 정서상 그 분들 모두들 어머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배우지 못한 恨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것은 나중에 이들이 학부모가 되어서 자식들에게 공부하라는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즈음에는 그 정도가 심하여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과거 나에게 있어서는 그건 분명 어머님의 恨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전 위안부 할머님께서 전재산을 학교에 기증하는 모습을 보았을때...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드는 생각은 저 할머님께서 얼마나 공부에 恨이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배우지 못한 恨 , 공부가 싫어서가 아니라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참... 여기서 먼저 하고자 했던 말은...
내가 얼마나 못난 녀석이냐는 것이다.
수능을 끝내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어느날 어머님이 나에게 물어왔다.
"어디 가보니 주부들 대상으로 운영하는 중학교가 있던데 다녀보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어머님이 학교에 다닐때 발생하는 문제, 그리고 자주 술을 드시는 아버지에 관한 문제 등을 생각했는지... 혹은.. 나도 그냥 어머님이 나이가 드셨으니 굳이 공부를 지금와서 해서 뭐해요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면 대학입시에 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그만 어머님께 "어머니 굳이 학교 다니지 마시구요 그냥 제가 알려 드릴께요" 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하루쯤 지났을까 나는 엄청나게 후회를 했고 나 자신이 미워졌다.
몇 일 지나서 어머님께 "전에 이야기한 학교 다니세요" 하고 이야기를 했으나.. 어머님께서는 "학교가 멀기도 하고 지금 해서 뭐하겠냐?"하시며 그만 두기로 하셨다.
그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나 자신이 미워진다.
그리고 나서 얼마후 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집과 떨어져 생활하게 되었다. 대학 1학년때 부터 바로 자취를 하게되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만 하여도 나는 '고교시절 공부를 잘 안했으니 부모님께 효도하기위하여 대학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 생각이 얼마나 갔을까?
대학에 입학하여 1주일 만에 '야학'동아리에 가입하고(뭐 동아리 가입이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활동들을 하느라 공부는 고교시절보다 훨 안하게 된 듯 하다.
대학에 가서 내가 '야학'을 하고 싶었던 것은... 과거 어머님께 했던 행동의 후회가 컸지 않나 한다.
그래서 난 '야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恨을 풀어드려야지 하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야학교사도.. 벌써 나름 6년차이다.
물론 활동의 방식은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동아리에서 하는 '시설야학'-사회복지 시설에서 중학생들 대상으로 수업하였고 대학 1학년 겨울방학때 한 2주 부산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지역 시설에 가서 아이들과 수업을 하였으니... 나름 그때에는 '시설'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시설병'을 해소하기 위하여 고민하고 술마시며 시간을 보냈으니...
그리고 대학 2학년을 마친후 군입대를 하고 군 제대후에 약 9개월 정도 집에 있는 동안 또 무얼할까 생각했더니...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잘 할수 있는 일은 바로 '야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한다.
그래서 또 지역의 검정고시 야학을 찾아 야학교사를 하였고.. 나름 경영부장 직책과 고등반 담임 교사등을 수행하며 활동을 하였다.
이 때에 어머님이 한번 내가 수업을 하던 야학에 오셨는데... 어찌 공부를 그렇게나 하고 싶어 하시던지.. 나는 슬며시 어머님께 "어머니 여기서 수업받으세요" 하였으나... 어머님은 "아들놈이 교사로 있는데 창피해서 어떻게 학생으로 들어오냐?"하셨다.
내가 다른 야학을 알아봐 준다고 하였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머님은 아직도 공부를 하지 못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복학하여 자취생활하면서는 군 입대전보다 훨 많은 일들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난 '수업'을 하고 싶어 신청한것이
외국인 노동자들 대상으로 수업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심각하고 아울러 그 2세들이 한국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어 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수업하고 싶었으나... 결국 하게 된것은 외국인 노동자들 대상으로 '한글'수업과 '컴퓨터'수업 그리고 나중엔 '수업'보다는 '노동상담'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ㅋ
그리고 이렇게 여러가지 하느라(?) 졸업을 제때 못할뻔 했는데.. 겨우 8학기 만에 졸업을 하긴 하였다.(물론... 중간에 계절학기를 꽉 꽉 채워듣는 힘든 과정은 있었다 ㅋ)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엔 정말 운이 좋아서 취업을 하게 되었고.. 이제 취업한지 제법 되어 몇 달지나면 2년차가 된다.
취업후에도 '야학'을 하고 싶어 지역의 '야학'을 찾았으니... 이젠 '야학'에 중독인가? ㅋ
이제 새로이 야학하는 형태는 '장애인 야학'이다. 이제 시작한지 한달여...
이전에 했던 '야학'의 형태와는 많이 다르고 새롭게 배울것도 많은 수업이다.
수업을 하며 항상 나는 학생들에게 배운다.
그리고 그 즐거움때문에 '야학'의 기쁨에 중독된것 같다.
비록 정식 교원은 아니지만... 난 나 스스로가 나름 '교사'라고 생각하며 이 일을 내 힘이 닿는데 까지 하고 싶다.
내가 모든 사람의 恨을 풀지는 못하겠으나... 적어도 몇 몇은 그 恨을 풀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계속 '수업'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뭐 가장 단순하게 말한다면 '좋아하니깐'
대학에 입학하여 가입한 유일한 동아리가 '야학'동아리였고
군 제대후에도 찾았던 것이 '야학'이었고
지금 직장을 다니면서 하는 것도 '야학'이다.
생각해보면... 가장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어느 어머님이나 비슷하겠지만...
어머님이 학교에 다녔어야 할 시기에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았다.
아직도 '남성'보다 '여성'이 사회생활하는데 여러가지 제약 혹은 차별이 있음을 생각하면
과거 어느정도나 심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과거 '여성'은 시집이나 잘 가서 살림이나 하면 되지 무슨 놈의 공부냐 는 말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기에 그 시대의 어머님들은(여기선 일단 내 감정상 어머님이라고 호칭하고 싶다. 물론 그렇지 않을수 있으나... 난 정서상 그 분들 모두들 어머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배우지 못한 恨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것은 나중에 이들이 학부모가 되어서 자식들에게 공부하라는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즈음에는 그 정도가 심하여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과거 나에게 있어서는 그건 분명 어머님의 恨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전 위안부 할머님께서 전재산을 학교에 기증하는 모습을 보았을때...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드는 생각은 저 할머님께서 얼마나 공부에 恨이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배우지 못한 恨 , 공부가 싫어서가 아니라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참... 여기서 먼저 하고자 했던 말은...
내가 얼마나 못난 녀석이냐는 것이다.
수능을 끝내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어느날 어머님이 나에게 물어왔다.
"어디 가보니 주부들 대상으로 운영하는 중학교가 있던데 다녀보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어머님이 학교에 다닐때 발생하는 문제, 그리고 자주 술을 드시는 아버지에 관한 문제 등을 생각했는지... 혹은.. 나도 그냥 어머님이 나이가 드셨으니 굳이 공부를 지금와서 해서 뭐해요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면 대학입시에 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그만 어머님께 "어머니 굳이 학교 다니지 마시구요 그냥 제가 알려 드릴께요" 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하루쯤 지났을까 나는 엄청나게 후회를 했고 나 자신이 미워졌다.
몇 일 지나서 어머님께 "전에 이야기한 학교 다니세요" 하고 이야기를 했으나.. 어머님께서는 "학교가 멀기도 하고 지금 해서 뭐하겠냐?"하시며 그만 두기로 하셨다.
그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나 자신이 미워진다.
그리고 나서 얼마후 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집과 떨어져 생활하게 되었다. 대학 1학년때 부터 바로 자취를 하게되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만 하여도 나는 '고교시절 공부를 잘 안했으니 부모님께 효도하기위하여 대학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 생각이 얼마나 갔을까?
대학에 입학하여 1주일 만에 '야학'동아리에 가입하고(뭐 동아리 가입이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활동들을 하느라 공부는 고교시절보다 훨 안하게 된 듯 하다.
대학에 가서 내가 '야학'을 하고 싶었던 것은... 과거 어머님께 했던 행동의 후회가 컸지 않나 한다.
그래서 난 '야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恨을 풀어드려야지 하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야학교사도.. 벌써 나름 6년차이다.
물론 활동의 방식은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동아리에서 하는 '시설야학'-사회복지 시설에서 중학생들 대상으로 수업하였고 대학 1학년 겨울방학때 한 2주 부산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지역 시설에 가서 아이들과 수업을 하였으니... 나름 그때에는 '시설'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시설병'을 해소하기 위하여 고민하고 술마시며 시간을 보냈으니...
그리고 대학 2학년을 마친후 군입대를 하고 군 제대후에 약 9개월 정도 집에 있는 동안 또 무얼할까 생각했더니...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잘 할수 있는 일은 바로 '야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한다.
그래서 또 지역의 검정고시 야학을 찾아 야학교사를 하였고.. 나름 경영부장 직책과 고등반 담임 교사등을 수행하며 활동을 하였다.
이 때에 어머님이 한번 내가 수업을 하던 야학에 오셨는데... 어찌 공부를 그렇게나 하고 싶어 하시던지.. 나는 슬며시 어머님께 "어머니 여기서 수업받으세요" 하였으나... 어머님은 "아들놈이 교사로 있는데 창피해서 어떻게 학생으로 들어오냐?"하셨다.
내가 다른 야학을 알아봐 준다고 하였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머님은 아직도 공부를 하지 못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복학하여 자취생활하면서는 군 입대전보다 훨 많은 일들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난 '수업'을 하고 싶어 신청한것이
외국인 노동자들 대상으로 수업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심각하고 아울러 그 2세들이 한국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어 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수업하고 싶었으나... 결국 하게 된것은 외국인 노동자들 대상으로 '한글'수업과 '컴퓨터'수업 그리고 나중엔 '수업'보다는 '노동상담'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ㅋ
그리고 이렇게 여러가지 하느라(?) 졸업을 제때 못할뻔 했는데.. 겨우 8학기 만에 졸업을 하긴 하였다.(물론... 중간에 계절학기를 꽉 꽉 채워듣는 힘든 과정은 있었다 ㅋ)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엔 정말 운이 좋아서 취업을 하게 되었고.. 이제 취업한지 제법 되어 몇 달지나면 2년차가 된다.
취업후에도 '야학'을 하고 싶어 지역의 '야학'을 찾았으니... 이젠 '야학'에 중독인가? ㅋ
이제 새로이 야학하는 형태는 '장애인 야학'이다. 이제 시작한지 한달여...
이전에 했던 '야학'의 형태와는 많이 다르고 새롭게 배울것도 많은 수업이다.
수업을 하며 항상 나는 학생들에게 배운다.
그리고 그 즐거움때문에 '야학'의 기쁨에 중독된것 같다.
비록 정식 교원은 아니지만... 난 나 스스로가 나름 '교사'라고 생각하며 이 일을 내 힘이 닿는데 까지 하고 싶다.
내가 모든 사람의 恨을 풀지는 못하겠으나... 적어도 몇 몇은 그 恨을 풀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계속 '수업'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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