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어리회에서 동아리 소식지에 넣을 글을 부탁받아 동아리에 전달한 글이다.

현재 어리회는 왜 '검정고시' 야학을 하고 있을까?

현재 어리회 회원들이 하고 있는 '검정고시'야학은 2004년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어리회가 창립된 해가 1981년임을 생각해보면 이전에는 어떠한 형태의 야학을 해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리회는 창립초기 '검정고시'야학의 형태로 시작하였다가 86년~89년까지는 삼덕원이라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시설야학'을 하였고 89년~97년까지는 봉천동에서 '도시빈민야학'을 98년~03년까지는 동명아동복지관이라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시설야학'을 그리고 04년부터 현재까지 고등과정으로 '검정고시'야학을 해오고 있다.

어리회가 기존에 해오던 야학의 형태를 계속 유지해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바뀔 때 마다 야학의 형태도 바뀌어 온 것이다. 그 상황이라는 것이 물론 동아리의 내부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나는 ‘야학은 시대의 산물이다’라는 명제로 생각해 볼 때 어리회의 역사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온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 야학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1. 일제하의 야학운동
2. 해방 후 ~ 1960년대
3. 1960년대 ~ 1970년대
4. 1970년대 ~ 1980년대
5. 1980년대 ~ 1987년
6. 1987년 ~ 90년대 말
7. 2000년대
정도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시대마다 야학의 특성은 조금씩 달랐고 그 활동 또한 조금씩 달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야학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다룰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어리회의 야학 특성을 보다 더 고민하기 위하여 자세한 내용은 어리회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한국 야학사’ 라는 자료를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다시 '어리회'를 중심으로 생각해 본다면 초창기 어리회 활동이 검정고시 야학의 형태 일 때(80년대 초중반) 학생들은 주로 어떠한 층이 많았을까? 아마도 학교를 다닐 시기를 놓친 학생들이 많았을 것이다.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시간을 활용하여 야학에서 수업을 받고 검정고시를 통하여 학력을 취득하는 형태가 일반적인 형태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야학에서 단순히 '검정고시'의 시험 합격만을 위한 수업의 형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야학수업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 생활적 요소들을 수업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배웠다고 생각된다.

이 후 '사회복지 시설'에서 '시설야학'의 형태로 공부방을 운영 할 때에는 '시설'이라는 특성속에서 공부방 활동을 하며 다양한 정서적인 유대감 등을 수업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형성하는 활동을 해왔다.
이어 '도시빈민 야학'의 형태에서는 봉천동 달동네와 철거지역에서 그 지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부방을 운영하며 어리회 회원들은 '도시빈민 문제'에도 자연스레 적극적으로 결합하게 되는 활동을 해왔다고 생각된다. 그 이후 활동공간에 학생수가 많이 줄고 다른 문제 등으로 97년부터 봉천동에 있는 동명복지관에서 '시설야학'을 진행하게 된다.

필자는 99학번에 어리회 25기다 보니 어리회에서의 야학 경험은 동명복지관에서 '시설야학'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 시절 이후가 더 구체적으로 기술됨은 양해해 주길 바란다. ^^;

당시 동명복지관에서 수업을 함께했던 학생들은 연고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IMF이후 경제난 등으로 인하여 '시설'에 맡겨진 학생들이 많았고 그러하기에 수업도 단순히 학업보조로만 진행한 것이 아니라 '시설'에서 발생하는 특성들 예를 들어 '시설병', '시설아동의 고등학교 졸업 이후의 과제' 등에 대하여 세미나 등을 통하여 연구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업방법 등을 모색하며 활동을 하였다.
동명복지관은 이후 동명아동복지센터로 명칭을 변경하고 지역사회에서 종합적인 복지관으로서의 역할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시설아동’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단순히 시설에서 함께 집단 생활하기 보다는 또래 혹은 적절하게 인원을 나누어 Group Home 시스템으로 복지관의 활동이 변모하게 된다.

이때에 어리회가 '시설야학'이 변모해 나가는 과정에서 활동의 새로운 방향을 '검정고시'야학으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당시 필자는 군 제대 후 부산의 검정고시 야학에서 교사활동 및 경영부장을 하고 복학을 한 터라 학내동아리로서 야학을 운영하는 어리회가 검정고시 야학 활동을 하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인 장소문제(수업을 진행하는 교실과 교사들이 서로 모여 이야기하는 교무실이 함께 있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였는데 많은 어리인들의 노력으로 이 동아리방을 나름 활용하고 기타 특활활동 등을 통하여 문제가 해결되어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어리인들은 수업을 하면서 어떠한 질문이 있을까?
현재 지면을 통하여 이야기 하다 보니 바로 이야기를 듣기 힘들지만, 내가 검정고시 야학을 할 당시 가졌던 질문을 몇 가지 스스로 적어본다면 이정도가 있지 않았을까 한다.

왜 학생들은 어머님(40~50대 정도의 아주머님들)들이 많을까?

왜 수업시간에 안정적으로 나오시는 학생분들이 몇 분 안될까?

젊은 친구들은 왜 많이 없을까?

먼저 첫 번째로 어머님들이 많은 것은 그 분들이 학교를 다녔어야 할 시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학교를 못간 경우가 많았고 특히 집안에 남자형제는 학교에 보내더라도 여자는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 현재에 그 분들이 어머님이 되고 공부에 대한 恨 등을 풀기위하여 이제 야학에 나오게 되는 케이스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그 분들이 안정적으로 나오기 힘든 것은 집에서 자녀들을 키우거나 가사일을 하는 경우 야학에서 수업을 지속적으로 받을 때에 집안에서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을 경우 가사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수업이 힘든 것이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없는 것은 최근에는 학교 진학률이 높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로 인한 검정고시 준비보다는 각자의 특별한 상황에 의하여 현재 야학에서 수업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학교를 다니다가 자퇴를 하거나 현재의 학교교육에 적응하기 힘든 케이스 등이다.
이런 경우가 90년대 후반 이후 점점 더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대안학교가 이 시기 많이 생겨나고 몇 몇 야학들이 '대안학교'의 형태로 탈바꿈 하며 발전해 나간 것도 이와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어리회가 처해있는 환경도 시대에 따라 변해왔고 야학을 구성하는 학생들도 변화해 온 것이다. 어리회가 야학동아리 이기 때문에 꼭 '검정고시'야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고 이 시대에 '야학'이라는 활동을 통하여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어떠한 형태의 야학이던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현재 하는 야학의 형태를 왜 지금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우리가 수업을 하면서 해나간다면 어리회의 야학활동이 더 의미 있고 더 발전적인 활동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현재 활동가들이 다시 한번 고민해 보자.                                       -  사고 그리고 실천 -

Posted by 기동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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