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계인권선언일이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선포되어 이날은 세계인권선언일로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에 맞추어 여러 행사들을 하곤한다.

그리고 얼마전 유엔 인권위에서는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 수감자에 보상"하라는 권고조치가 내려졌다. 이것은 "한국 정부가 진정인들을 형사 처벌한 것은 시민·정치적 권리 규약 제18조가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에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나는 이 지적이 지극히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수백 수천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아 그 중요한 젊은 나이에 '전과자'라는 낙인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하면 얼마나 사회적으로 큰 손실인가?

여기서 발생하는 심리적인 문제는 바로 현역 복무를 마친 예비역들의 심리적 상실감 혹은 보상심리가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22살의 나이에 2년 2개월동안 사회와 단절된 군복무를 하여 나름 그 시기에 하고 싶었던 많은 일들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군복무 중 사격소음으로 인한 이면증으로 한때 좋아했던 메탈음악을 큰 소리로 듣는데에 불편함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보상심리로 인하여 무조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감옥행으로 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볼때에 적절한 것일까?

첫번째로 종교적인 이유의 양심적 병역거부문제를 살펴볼 수 있는데

과거 일제시대에 '여호와의 증인'의 종교원들이 집단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였을때는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투사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http://h21.hani.co.kr/section-021075000/2004/05/021075000200405270511062.html (참고글 :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여호와의 증인' 앞에서 부끄럽다)

그러나 이제와서 그들을 이단이라거나 등의 시각으로 말하는 것이 과연 합당할까?

그 종교가 '이단'이고 아니고의 문제는 종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그 '이단'이고 아니고의 문제를 가지고 '양심적 병역거부'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다.

그들이 일제시대에 집종을 거부하며 죽음을 받아들였을 때는 위의 한홍구의 역사이야기에서 처럼 그 어느 사회주의자나 독립투사들의 모습보다도 더 강인한 모습이었다.

두번째로는 종교적인 이유 이외에 '평화'활동가 들의 '양심적 병역거부'도 살펴볼 수 있다.

이 경우 어떠한 사람은 '같은 민족에게 총을 들기가 싫다. 평화를 원한다' 하며 '평화' 활동가'로서 병역을 거부한 사례가 있고

또 어떤 한 사람은 장애인 및 인권 운동가로서 활동하며 인권의 문제를 실현하려 '양심적 병역거부'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도 있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이외에도 '불교'나 '천주교'에서도 '평화'의 관점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요구는 '병역거부'가 아니라 '대체복무제'의 시행으로 자신들의 방향인 '평화'를 지키려 하는 것이고 '인권'을 지키려 스스로 병역거부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종교적인 이유이든 평화적인 이유이든 이들이 요구하는 '대체복무제'가 그리 어려운 일일까?

대체복무제는 잘 시행한다면 '병역회피'의 수단이 되기 보다는 현재 사회적으로 어렵고 힘든 공공의 일자리에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음으로 사회적으로도 이익이 되리라 생각한다.

'집총'을 면제하는 대신 현역복무기간보다 더 오래 사회봉사활동을 하도록 한다면 대체복부제가 병역회피의 수단이 될 것이라는 국방부나 일반적인 시각은 그저 우려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TV에서 대만의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적이 있는데... '병역회피'가 되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시행 후 몇년이 지나고 나서 부터는 오히려 대체복무제의 긴 복무기간과 어려움이 많이 알려졌다고 한다.

오늘 세계인권선언일 그리고 반기문 전 외교부장관이 UN사무총장이 되어 전 세계인들 앞에서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려면 얼마전 유엔에서 권고한 "양심적 병역거부 수감자들에 대한 보상"을 곱씹어 생각해 보고 더 이상 '대체복무제'를 미루지 않고 즉각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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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교원평가제 반대 교육재정 확보를 요구하는 전교조 교사들의 연가투쟁이 있었다.

이를 두고 많은 말이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은 교사들의 연가투쟁을 반대하였다.

용어에 투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였을까? 아님 전교조에 대한 반발때문이었을까? 아님 무엇때문에.. 그리 낮은 지지를 받을까 생각해 보았다.

일단...

전교조는 합법적인 조직이다. 물론 아직 많은 사람들이 교사가 어떻게 노동자냐 하며 말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으나 지난 과거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정식으로 인정받은 조직이다.

그렇다면... 노동 기본권이라 하는 노동3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여기서 노동 3권이라 함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다. 이 세가지는 기본적으로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경우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이 단체행동권인데...

만약 단체행동권 없이 단결권으로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단체교섭권이 있다 하여도... 교섭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교섭의 상대방이 이해관계로 얽히어 교섭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럼 교섭은 어떻게 가능할까?

내 생각엔 교섭은 불가능하다. 단체행동권이 없는 노동기본권은 기본권이라기 보다는 단체교섭 구걸이라고 볼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경우 국가적으로 기본이 되는 상황 또는 업무에 있어서도 단체 행동권을 허용하였을때 생기는 문제를 말할수 있지만.. 그러한 경우 현재에도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거나 국가 방위산업에 관한 업무등에는 제한을 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교직원이나 공무원의 경우 단체행동권 즉 쟁의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연가투쟁과 관련하여서도 쌍방에서 불법이라 주장하는 듯 하다.

일단 개인적으로는 전교조의 노동3권이나 전공노의 노동3권은 적절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문제는 일단 차치하고라도... 전교조의 연가투쟁을 불법으로 보아야 할까?

일단 연가라 함은 법률로 보장된 것이기 때문에 연가를 신청하는 것은 법률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미리 전교조 조합원들이 연가를 신청했다면 오히려 그에 맞게 수업 결손을 방지할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 이번 연가투쟁에 참여한 교사가 3000명이 채 안되었고 평균 전국 각 학교당 1명이라고 방송에서 이야기 하였다. 그렇다면 학교당 적어도 1명의 교사에 대한 결손이 수업에 큰 부담이 될 정도로 문제가 될까? 적어도 제대로 학교 수업을 위해서는 적절한 인원에 대한 대비가 항상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먼저 교육부에서 연가를 내는것에 대하여 불허할것. 연가 허용에 관하여서도 징계를 한다고 하면 어떻게 교사들은 목소리를 내란 말인가? 그냥 앉아서 대화를 허용하고 요구사항을 조정할수 있도록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연가투쟁은 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하며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법적으로 그냥 파업의 형태를 취한것도 아니고 법률로 보장된 연가를 행사하여 목소리를 내려 한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끔 사람들의 심리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회사에서 노동기본권도 없고 연가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데... 소위 말하는 교사들은 좋은 여건에 있으면서 왜 그러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물론 교사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는 안정적이나 그렇다고 하여 연가를 보장해서도 안된다 이러한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은가?

쉽게 비유하여 어떠한 결과에서 못한 결과와 비교하여 위안을 삼는것보다는 좋은 결과와 비교하여 좋게 되려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 심리가 아닐까? 그렇다면 교사들의 연가는 법률로 보장된 것이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연가투쟁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난 것들을 적어 보았다.

이어서 교원평가에 대한 것을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요즈음에 평가받지 않는 직업이 어디있나? 누구나 평가를 받으며 생활한다를 이야기 할듯 하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단 쟁점별 분석을 한번 읽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http://news.media.daum.net/society/affair/200611/22/pressian/v14801984.html (교원평가제가 뭐길래..)

나름 위의 프레시안 기사에서 쌍방의 의견과 쟁점을 잘 정리했다고 생각한다.

교육부도 인정하는 것이 부적격교사문제와 교원평가제의 문제는 다른 것이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과거 학교다닐 시절의 안좋은 추억으로 부적격 교사에 관한것을 교원평가 문제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인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원평가제가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교육 현실 (예를 들어 좋은(?)대학에 몇 명 보내느냐가 교사의 능력으로 생각되는 등)에서 교원평가가 올바른 방향일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평가라는 것이 언제나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떠한 기준으로 하느냐의 문제도 아주 어려운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우선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물론 이 문제는 아주 어려운 문제이나 지금 생각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교조의 교원평가 반대투쟁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한가지 아쉬운 점은 현재 많은 학교에서 소위 기간제 교사라는 신분(즉, 비정규직)으로 수업을 하는 교사들이 굉장히 많다. 원래의 취지는 기존 교사의 임신, 육아, 치료 등의 기간에 교사로서 활동하는 것이나 많은 학교에서 그러하지 않은 상황에도 단지 비용등을 아끼기 위하여 많이 이용하고 있다. 신분적으로도 불안정하고 금전적으로도 부족하면서 수업은 똑같이 하는 이러한 상황... 전교조의 교육재정확보에 이러한 문제의 목소리가 물론 반영되어 있겠으나 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문제까지 크게 목소리 내었어야 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비록 교원은 아니지만... 예로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했고 그 말을 믿는 사람이다.

이렇게 중요한 교육이 바로설수 있도록 노력하는 교사들의 모습을 좋아한다.

이렇게 중요한 교육에서 한방향의 목소리만 존재해서는 교육이 올바르기 힘들다. 전교조라는 조직이 올바른 목소리를 내고 참교육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때 그리고 교육당국도 여러 목소리를 듣고 다시한번 현장의 현실에 깊게 생각해볼때 교육은 지금보다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아주 당연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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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청소년 위원회가 2007년부터 만 24세 이하의 학생이 80%이상, 상시 학생수 10명 이상의 야학에만 재정적인 지원을 하기로 했다.

국가청소년 위원회는 청소년 육성기금으로 야학을 지원해 오다가 현재 성인들이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 보조금을 지원할 명분이 없다며 2007년 새해부터 성인야학에 지원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는 이 결정이 현실을 무시한 처사이며 올바르지 않은 방향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장애인 야학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지만 과거 검정고시야학에서 자원활동을 했었던 때를 생각해보면 현재의 정책방향이 올바르지 않음을 바로 알수 있다.

내가 검정고시 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할 당시 학생의 다수는 소위 말하는 주부들이었다.

어머님 나이대가 많아서 주로 학생분들을 호칭할때는 OO어머님 식의 호칭으로 학생분들을 불렀던 기억이 난다.

왜 학생들의 다수가 성인이고 또한 다수가 여성일까?

이것은 우리나라가 과거 어떠한 교육방향을 해왔는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정규적인 교육을 받기가 어려웠다.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매우 부족하였다. 그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듯.. '여자는 시집이나 잘 가면 된다'는 성차별적인 생각이 만연했던 것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오래전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보여진 내용을 생각한다면 더 분위기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한다.


현재 성인들은 왜 야학을 찾는 것일까?


우선 기본적으로 비용문제일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야학은 수업료를 받지 않고 무료로 누구나 야학이라는 공간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만학의 꿈을 안고 야학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주변에서 검정고시 학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편인데.. 일정정도의 비용을 부담하고 학원에 다닐수 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는 이유가 있다.


지금은 그 학원들이 어떻게 운영하는지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야학 교사로 활동하던 시절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다가 야학으로 발을 옮긴 한 학생분의 말에 의하면..


검정고시 학원은 보통 일정금액의 학원비를 내고 '합격'을 할 때까지 추가적인 비용없이 학원에서 수강을 계속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이야기는 학원에서는 수업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수업을 듣게 되고 다른 수강생에 비하여 이해속도가 느릴 경우 그저 수업시간에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 주변에 알아보니 '야학'이 있었고 학원이라는 공간보다 편한 마음으로 배울 수 있고 비슷한 여건의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다보니 과거 학교를 다니지 못한 恨도 사라지고 학교다니는 마음이라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현재 많은 성인분들이 만학의 꿈을 안고 야학이라는 공간에 와서 배움의 기쁨을 찾고 또한 '학교'를 다닌다는 정서적인 기쁨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야학 재정은 어떻게 운영될까?


야학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수는 있느나 내가 경험한바와 교류 했던 야학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야학 재정의 대부분은 공간 임대료이다. 내가 활동했던 공간은 비용 문제가 커서 지하에 공간이 마련되었다. 지역마다 차이가 조금은 있을수 있으나 내가 활동했던 부산의 경우 많은 야학들이 지하에 공간을 마련해 둔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공간적인 문제에서 보면 월 임대료가 적어도 20~30만원에서 규모에 따라 100만원 이상까지도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계산해보면 년간 비용이 적어도 3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 정도가 기본적인 공간운영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교재비용과 공간운영비 등이 운영비용에 추가되고 있다.

현재 이러한 재정문제에서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바로 올해까지 정부에서 지원을 했던 보조금이다.

그리고 자원활동하는 교사들이 약간의 회비를 내는 경우도 있고, 역사가 있는 야학의 경우에는 야학을 지나온 교사들이나, 졸업생들이 후원회를 구성하여 후원금이 일정정도 들어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7년부터 정부지원금이 중단된다면 많은 야학들은 문을 닫을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정부의 야학 지원책 올바른 방향일까?

정부의 지원책은 상시 인원이 10명이상이고 만 24세 이하의 청소년이 80%이하여야 지원을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 대부분 야학의 현실은 70~80%이상의 학생들이 오히려 25세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다.

정부는 '평생교육'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평생교육을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과거 교육 서비스를 받지 못한 많은 분들이 만학의 꿈을 안고 찾는 야학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야학'이 현재 이러한 분들을 위한 '평생교육'기관으로 자리잡았음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대안없는 지원중단이 올바른 방향일까?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올해 지원한 금액이 약 5억 5,300만원 정도라고 한다. 행정부서의 예산으로 보아서는 절대 많은 액수가 아니다. 이정도의 금액을 지원하는 것을 갑작스레 2007년 부터 중단을 하겠다고 말한 정부... 답답한 생각이 든다.

아울러 야학의 구성원이 현재 만 25세 이상의 성인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평생교육'공간으로 생각한다면 교육부나 산업자원부 혹은 노동부 등에서 지원을 하도록 제도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상황은 어느부서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정해진 방침은 현재 지원을 해오던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지원규정에 따라 지원을 하기로 하여 실제로 지원이 상당부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현재 전국야학협의회 등에서는 비상대책위(http://cafe.daum.net/togetheryahak )를 구성하여 현재의 야학상황을 알리고 갑작스런 지원 중단에 대하여 반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정부 또한 갑작스런 지원중단이 되지 않도록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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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신문 - 2005년 08월 04일 (목요일) ] 생각나눔 기사중

한 직장인 수험생은 “검정고시를 본다고 휴가를 얻기가 쉽지 않다.”면서 “다른 자격시험에 비해 검정고시는 부끄럽다는 이유로 주변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검정고시는 한해 두차례 있다.1차는 4월5일 식목일,2차는 8월 첫째주 평일로 못박혀 있다.2003년에는 5일, 지난해는 3일에 치러졌다. 그나마 내년부터 식목일마저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되면, 두차례 모두 평일에 치러지게 돼 수험생들의 근심도 크다.

직장인과 영세민이 대부분인 응시생들에게 평일의 시험은 하루 일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1994년까지 일요일에 봤던 검정고시가 느닷없이 평일로 바뀌었을까.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종교의 자유와 관련해 당시 집단민원이 청와대에 제기되면서 바뀌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매년 150만명 이상이 치르는 토익(TOEIC)시험일이 일요일인 것을 감안하면 바뀐 배경이 석연치 않다. 검정고시 응시자는 한해 6만명에 불과하다.

검정고시를 주관하는 전국 시·도교육청 협의회도 고심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수험생의 고충을 공감하고 있는 만큼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평일에 시험을 치르는 것만으로도 교육소외 계층에 검정고시는 또 하나의 장벽이다.65세의 한 수험생 할머니의 목소리가 힘차다.“가난한 형편에 3남4녀의 맏딸이라는 이유로 못 배운 게 평생 한이 됐제. 이제라도 공부해서 가슴에 맺힌 한을 풀고 싶소.”

- 나도 검정고시 시험장에 간적이 두번 있는데... 그것은 내가 수업했던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게 되었기 때문에 학생분들을 응원하러 시험장에 간 것이다.

시험장에 가면 재미있는 풍경들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다른 시험과는 달리 쉬는시간에 교실에 들어갈수 있도록 되어 있다.

내가 2003년 8월에 검정고시 시험장에 갔을때에 학생분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을 시간에는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중간에 쉬는 시간에는 각 교실을 방문하여 학생분들 어깨를 주물러 드렸었다.

개인적으로는 참 안타까운 것이 보통 검정고시 학원에서는 수험생들에게 모든 편의를 다 제공한다. 시험장에 가면 학원에서 나눠주는 전단지와 예상문제지, 그리고 컴퓨터용 싸인펜까지 나눠준다.

나를 비롯한 야학교사들은 그러할 형편은 안되지만... 쉬는 시간에 학생분들을 찾아 응원하고 어깨를 주무르는 일은 그 어느 학원에서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튼.. 오늘 생각난 것이 그 '시험'이라는 것인데.. 검정고시의 원 취지가 학교를 다닐 기회를 놓쳤던 분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일 것인데... 그 분들이 평일에 시험을 보도록 하는 지금현재의 제도는 참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위의 기사에서 처럼 토익시험에 대하여선 누구도 민원을 제기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 시험일에 나야 뭐 백수인 신분이라 시험장에 갈 수 있었는데... 야학 교사를 하는 다른 선생님은 직장을 가느라 참여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한 선생님은 그 날 휴가를 써서 오기도 하였다.

앞으로 시험일이 정말 수험생들을 위하여 고려되었으면 하고...

요즈음 많은 비정규 대안 학교들이 정규교육시설로 인정 받고 있기도 하지만... 그 학교에도 다니기 힘든 많은 분들을 위하여 검정고시 시험이 보다 많은 분들이 시험을 볼 수 있는날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따라 갑자기

내가 앞에서 수업할때에 글자가 잘 안보인다고 크게 적어 달라 하시던 어머님과 "선생님 그래프가 뭐고?" 하고 물어보시던 어머님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언젠가 대학에 복학 한 어느날 "선생님 나 이번에 다른과목 합격해서 고졸자격증 땄다 선생님 부산 함 와서 밥먹으로 온나" 하시던 학생분의 목소리가 생생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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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야학을 하는 이유는...

뭐 가장 단순하게 말한다면 '좋아하니깐'

대학에 입학하여 가입한 유일한 동아리가 '야학'동아리였고

군 제대후에도 찾았던 것이 '야학'이었고

지금 직장을 다니면서 하는 것도 '야학'이다.

생각해보면... 가장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어느 어머님이나 비슷하겠지만...

어머님이 학교에 다녔어야 할 시기에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았다.

아직도 '남성'보다 '여성'이 사회생활하는데 여러가지 제약 혹은 차별이 있음을 생각하면

과거 어느정도나 심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과거 '여성'은 시집이나 잘 가서 살림이나 하면 되지 무슨 놈의 공부냐 는 말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기에 그 시대의 어머님들은(여기선 일단 내 감정상 어머님이라고 호칭하고 싶다. 물론  그렇지 않을수 있으나... 난 정서상 그 분들 모두들 어머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배우지 못한 恨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것은 나중에 이들이 학부모가 되어서 자식들에게 공부하라는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즈음에는 그 정도가 심하여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과거 나에게 있어서는 그건 분명 어머님의 恨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전 위안부 할머님께서 전재산을 학교에 기증하는 모습을 보았을때...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드는 생각은 저 할머님께서 얼마나 공부에 恨이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배우지 못한 恨 , 공부가 싫어서가 아니라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참... 여기서 먼저 하고자 했던 말은...

내가 얼마나 못난 녀석이냐는 것이다.

수능을 끝내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어느날 어머님이 나에게 물어왔다.

"어디 가보니 주부들 대상으로 운영하는 중학교가 있던데 다녀보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어머님이 학교에 다닐때 발생하는 문제, 그리고 자주 술을 드시는 아버지에 관한 문제 등을 생각했는지... 혹은.. 나도 그냥 어머님이 나이가 드셨으니 굳이 공부를 지금와서 해서 뭐해요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면 대학입시에 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그만 어머님께 "어머니 굳이 학교 다니지 마시구요 그냥 제가 알려 드릴께요" 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하루쯤 지났을까 나는 엄청나게 후회를 했고 나 자신이 미워졌다.

몇 일 지나서 어머님께 "전에 이야기한 학교 다니세요" 하고 이야기를 했으나.. 어머님께서는 "학교가 멀기도 하고 지금 해서 뭐하겠냐?"하시며 그만 두기로 하셨다.

그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나 자신이 미워진다.


그리고 나서 얼마후 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집과 떨어져 생활하게 되었다. 대학 1학년때 부터 바로 자취를 하게되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만 하여도 나는 '고교시절 공부를 잘 안했으니 부모님께 효도하기위하여 대학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 생각이 얼마나 갔을까?

대학에 입학하여 1주일 만에 '야학'동아리에 가입하고(뭐 동아리 가입이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활동들을 하느라 공부는 고교시절보다 훨 안하게 된 듯 하다.

대학에 가서 내가 '야학'을 하고 싶었던 것은... 과거 어머님께 했던 행동의 후회가 컸지 않나 한다.

그래서 난 '야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恨을 풀어드려야지 하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야학교사도.. 벌써 나름 6년차이다.

물론 활동의 방식은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동아리에서 하는 '시설야학'-사회복지 시설에서 중학생들 대상으로 수업하였고 대학 1학년 겨울방학때 한 2주 부산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지역 시설에 가서 아이들과 수업을 하였으니... 나름 그때에는 '시설'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시설병'을 해소하기 위하여 고민하고 술마시며 시간을 보냈으니...

그리고 대학 2학년을 마친후 군입대를 하고 군 제대후에 약 9개월 정도 집에 있는 동안 또 무얼할까 생각했더니...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잘 할수 있는 일은 바로 '야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한다.

그래서 또 지역의 검정고시 야학을 찾아 야학교사를 하였고.. 나름 경영부장 직책과 고등반 담임 교사등을 수행하며 활동을 하였다.
이 때에 어머님이 한번 내가 수업을 하던 야학에 오셨는데... 어찌 공부를 그렇게나 하고 싶어 하시던지.. 나는 슬며시 어머님께 "어머니 여기서 수업받으세요" 하였으나... 어머님은 "아들놈이 교사로 있는데 창피해서 어떻게 학생으로 들어오냐?"하셨다.

내가 다른 야학을 알아봐 준다고 하였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머님은 아직도 공부를 하지 못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복학하여 자취생활하면서는 군 입대전보다 훨 많은 일들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난 '수업'을 하고 싶어 신청한것이

외국인 노동자들 대상으로 수업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심각하고 아울러 그 2세들이 한국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어 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수업하고 싶었으나... 결국 하게 된것은 외국인 노동자들 대상으로 '한글'수업과 '컴퓨터'수업 그리고 나중엔 '수업'보다는 '노동상담'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ㅋ

그리고 이렇게 여러가지 하느라(?) 졸업을 제때 못할뻔 했는데.. 겨우 8학기 만에 졸업을 하긴 하였다.(물론... 중간에 계절학기를 꽉 꽉 채워듣는 힘든 과정은 있었다 ㅋ)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엔 정말 운이 좋아서 취업을 하게 되었고.. 이제 취업한지 제법 되어 몇 달지나면 2년차가 된다.

취업후에도 '야학'을 하고 싶어 지역의 '야학'을 찾았으니... 이젠 '야학'에 중독인가? ㅋ

이제 새로이 야학하는 형태는 '장애인 야학'이다. 이제 시작한지 한달여...

이전에 했던 '야학'의 형태와는 많이 다르고 새롭게 배울것도 많은 수업이다.

수업을 하며 항상 나는 학생들에게 배운다.

그리고 그 즐거움때문에 '야학'의 기쁨에 중독된것 같다.

비록 정식 교원은 아니지만... 난 나 스스로가 나름 '교사'라고 생각하며 이 일을 내 힘이 닿는데 까지 하고 싶다.

내가 모든 사람의 恨을 풀지는 못하겠으나... 적어도 몇 몇은 그 恨을 풀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계속 '수업'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Posted by 기동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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